KayAKAJemima 2011. 2. 9. 11:43

아.

 

편찮으신, 많이 편찮으신 아버지.

 

그런데 내 머릿속은 외국 드라마 한 편이 판치고 있고.

 

병원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그걸 0.1%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강박관념이 더욱 이 드라마에의 몰입을 강요하는 듯.

 

Sherlock. 마켓에서 뭐 사면 같이 날아오는 무료 다운로드 쪼가리들, 여느 때처럼 버리려다가, 문득, Sherlock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접속 -> 회원가입 -> 원판과 더빙판 불법다운 -> 탈퇴.

(젠장, 그거 이용했더니 컴터가 약간 메롱이 된듯. 기분나뻐.)

 

DVD로 출시가 임박했으니 그거 사서, 불법 다운한 거 드라마 관계자들에게 사죄해야지. 더빙판도 넣어줘서 고마워요.

 

뭐, 셜록 홈즈의 광팬이란 소리가 무색하게 (넌 사실 광팬 아니지) 아무 정보도, 관심도 없었잖아. 이 드라마가 전세계를 휩쓸던 2010년 여름에 말이야. 맨날 뒷북만 치고 있지.

 

아, 무지막지 뒷북을 치고 있긴 한데.... 두 달 정도 전에 KBS에서 더빙판을 방영한 데 이어, 오늘(오늘!) 밤 OCN에서도 드디어 런칭을 한다. 오늘 밤은 병원에서 자야 하니 그림의 떡이 됐지만.

 

어쨌든, 전혀 모르다가 OCN 판본 보고 뒷북 치게 될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니, 그들보단 먼저라는 생각으로 위안해야지, 훗.

 

저번에 KBS 더빙본을 보고 여기 글을 남긴 이후, 다운받은 파일들을 많이 많이 많이 보았다.

 

제작과 각본을 겸한 인물들이 영국 TV에서 정말 유명한 인물들이라던데 (뭐... '닥터 후'가 어쩌고... etc.) 드라마를 꼼꼼히 보며 느낀 건 오직 하나다. 이 홈즈 오타쿠들.

 

유명한 고전이나 캐릭터를 상업적 수완이 좋은 장사꾼에게 돈과 함께 던져줬을 경우 뽑아져 나오는 한숨나오는 작품이 아니더라는 말이다. 같은 팬이 '여! 친구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홈즈씨 가지고 이런 거 만들어봤어. 함 볼래?'라는 느낌이었다. 팬으로서 자기들이 보고 싶은 홈즈의 모습을 그려놨으니 다른 팬들도 환호하는 건 당연해. 그들 중 하나인 마크 게티스는 극중에서 셜록의 형인 마이크로프트로도 등장했는데, 그걸 모르고 볼 때도 마이크로프트 씨가 맘에 들었는데(더빙판의 김민석씨~ 하트 뿅뿅~) 아, 그분이 각본도 쓰셨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호감도가 235%정도 급상승해 버렸다.

 

시리즈의 제목이 '셜록'이라는 것이 특이한데, 백 년이 넘게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던 '홈즈'라는 이름을 빼고 무엇을 강조하려 했을까. 캐릭터겠지. 셜록 홈즈라는 인간 자체. 그런데 한편으론.... 드라마 전체를 통해 이상할 정도로 성 대신 이름들이 난무하는데 뭐-언가 분위기 애매하다. 심증은 확실하나 표현할 길이 없어....-_-

 

하여튼, 그동안 홈즈 매니아들을 '셜로키언' 혹은 '홈지언'이라고 불러 왔는데 두 파가 앞으로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홈즈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는 배우, 홈즈 역(어떤 전설적인 배역이 안 그렇겠느냐마는)을 맡는 순간부터 그 배우는 굉장한 찬사와 극심한 욕설의 갈림길에 서게 될 운명이지만, 어쨌든 그는 첫번째를 챙긴 건 확실한 거 같다. 백이면 백 반하고 말 그 독특한 목소리는 어차피 흉내내봤자 느낌도 못 살리겠고 욕만 먹을 게 분명하므로 더빙판은 우리말 성우 재량에 맡겨버린 모양새인데, 장민혁씨, 잘 하셨으나 약간 아쉽다. 근데 '테디베어' 대사 나오는 부분은 우리말 더빙이 '조금' 더 귀엽다. >.< 두번째는 손, 아, 손 예쁜 남자들을 몇몇 알고 있는데 또 한 명 추가. 홈즈의 트레이드마크인, 머리회전 때마다 다소곳이 모아져 턱이나 입술에 닿는 손 장면이 많아 너무 고맙다. ㅜ.ㅠ 그리고 간혹 클로즈업되는 회색 눈동자는, (한 번은 홈즈의 눈에만 집중해서 3편을 내리 봤었다) 관찰이나 추리할 때의 너무나 사실적인 날카로운 눈동자 움직임에서부터(눈동자를 잘 보고 있으면 그가 '연기'가 아니라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분한' 상태의 몽롱함까지 완벽하게 커버하는 눈이다. 목소리나 손이나 눈? 이런 거 따지기 전에, 그는 자기가 들어가야 할 캐릭터를 정말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캐릭터에 그렇게 매진해 줘서 고마워요~ 라고 말 한 마디 건네고 싶었다.

 

왓슨 역의 마틴 프리먼은 일찌기 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주인공으로 접했건만 전혀 기억 안나는... 그 어디쯤 위치. 왓슨은 130여년 간 홈즈 옆에서 그를 빛나게 하는 다소곳한 동반자 역할에 충실해 왔는데 이 시리즈에서도 그걸 벗어난 파격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원작에서 홈즈가 시키는 대로 어디든지 가고('퇴직한 물감 장수'에서 왓슨 정말 불쌍했다) 무슨 심부름이든지 하는(아! '고명한 의뢰인'에서 홈즈가 내준 '중국 도자기 역사 암기 프로젝트'! 이거 읽고 진심 감동 먹었음) 등등 그런 착한 왓슨보다는 조금은 성질도 부리고, 또 원작보다 훨씬 사건에 깊게 개입하는 느낌이다. 에피소드 겨우 세 편에서 한 편은 홈즈의 목숨을 구하고 두 번은 납치를 당하다니! -ㅇ- 그리고 원작에는, 홈즈가 다소 괴팍하고 냉소적이기는 하나 누가 뭐래도 '신사'이고 왓슨은 그런 홈즈를 존경을 담은 동료로 대하는데, 드라마의 셜록은 상당히 원석 상태라.... 회를 거듭할수록 괜찮은 모습을 찾겠고 그 모습에 가장 기여하게 될 인물이 왓슨임은 분명해 보인다. 프리먼은 헐리웃 기대작 '호빗'의 주인공 빌보 배긴스 역에 낙점되어 어쨌든 (나 포함) 몇천 만 반지 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되었는데, '호빗'이 그 인생의 무엇이 되든, 그가 시작한 왓슨 선생의 여행도 충실히 걸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 사춘기 시절을 책임진 '피라미드의 공포'라는 홈즈 영화. 정말 아끼는 작품인데, 영국 영어를 듣고 싶을 때 늘 꺼내드는 DVD이기도 하다. 여기서 귀가 쫑긋거리곤 했던 '레스트라-드(Lestrade)'와 '바-스(Vase)'라는 단어를 이 드라마에서도 들을 수 있다. 미국 영어와 전혀 다른 발음이어서 처음 볼 때 엄청 신기했거덩. 물론 미국 영어와 다른 발음들 천지였지만 그 두 단어를 특히 좋아했다고. :) 아무도 신경 안쓰고, '그게 뭐야'라고 치부해도 할 말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야.

 

 

아, 올 9월에 나올 시즌 2의 세 가지 키워드는 애들러, 하운드(사냥개), 라이헨바흐라고 하네.

 

애들러: 아, 아, 그녀. 19세기의 오페라 가수와 매치되는 21세기 직업은 아무리 생각해도 연예인. 무지 섹쉬하고 영특한 그녀가 연상되지만, 21세기의 아이린은 그것만으론 부족하지 않을까? 21세기의 여자들은 99% 똑똑하다. 왓슨의 연애 상대인 사라 소여만 해도 의사에다가 꽤 똑똑한 여자로 그려진 편 아냐? 1편의 피해자 제니퍼 윌슨에게도 '영리한 여자야!'라고 소리를 질러 댔고 말이지. 섹쉬하고 스마트할 뿐인 아이린 애들러는 'Sherlock' 안의 홈즈에겐 별로 어필하지 못할 거 같어. 철부지 어린애처럼 구는 셜록이 다소 부각되니만큼 뭔가 그런 것과 관련시켜도 재밌을 듯. 하여튼 팬들의 뒤통수를 후려칠 만한 재기발랄한 설정이 나오기를 바래본다. '애들러'라는 성을 가진 남자만 아니기를 바랄 뿐. 어헛? "여장은 제게 식은 죽 먹기랍니다." ??? ㅠ.ㅠ

 

하운드: 코난 도일 경의 장편 네 편 중 세 편은 시즌 1에서 조금씩 인용이 되었다. '주홍색 연구'는 제목부터 시작해 수많은 설정을 첫 편 '분홍색 연구'에 빌려주었고, '네 개의 서명'은 벽을 기어오르는 침입자 같은 설정 등, '공포의 계곡'은 책을 이용한 암호 단서 찾기로 둘째 편 '눈 먼 은행가'에 등장했다. 코난 도일 경의 장편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배스커빌의 사냥개' 이야길 어떻게 풀어갈 지 기대된다. (근데 개인적으론 저 장편 별로라서.... ㅡ,.ㅡ) 어쨌든 카트라이트가 나왔음 좋겠어.

 

라이헨바흐: 고리타분하게 스위스 마이링겐의 폭포가 그대로 등장하란 법은 없지. 이름은 어디에든 갖다붙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등장하면 멋있을 거 같다. 로케이션 촬영으로 돈 많이 들 듯(-ㅇ-). 이름 하니, 세바스천 모런이란 이름도 모리아티가 기르는 뱀이 될 수도 있는 일. 엉, 그러고보니 시즌 1 두번째 편에 세바스천이란 이름이 나왔네? 어쨌든 이 키워드가 등장했으니 모리아티의 운명은 시즌 2까지라는 뜻인가?

 

이 시리즈가 백만년 계속되었음 소망하는 이유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홈즈에겐 보여줄 게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있고, 시즌 1의 얘기들처럼 하게 된다면야 팬들은 시청 내내 솟는 아드레날린으로 밤잠을 설치게 되리라. 이 시리즈는 스마트해 죽을 지경인 똑똑한 시청자들의 야유를 피할 수 있는 천혜를 누리고 있는데, 다른 작품에서 모 탐정이나 수사관이 날카롭거나 기막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추리 etc. 를 보여주면 단번에 '홈즈에서 베낀 거잖아'하는 야유가 날아들지만 (또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지만), 이 시리즈는 '오렌지 씨'라는 단어만 등장해도 환호를 하는 인간들이 지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글씨가 쓰인 종이봉투 한 장이나 (회중시계를 대신한) 핸펀 하나에서 줄줄 나오는 추리, 왓슨에게 추리를 맡겨놓고 '좋아, 훌륭해' 등의 추임새를 넣어 주고는 나중에 민망하게 만드는 장면이라든가, 소년 탐정단 격인 거리의 남녀 청소년들, '이 친구가 마약같은 거 할 사람으로 보여요?'라는 왓슨의 말에 껄끄러워지는 분위기(원작의 코카인 습관을 떠올리게도 만들면서, 드라마 속 홈즈도 과거에 마약을 했을 가능성을 암시), 원작의 '전기작가' 대신 '블로거'란 단어로 치환된 재치있는 대사, '이건 니코틴 패치 세 개짜리 문제니까'같은 대사는 또 어떻고! >o<

 

작위 준다는 말에 스트레스 받는 셜록, 19세기의 애국 사인인 VR 대신 스마일 얼굴을 총으로 그려내는 장면 등은, 아아, 귀여운 애교로 보인다.

 

시즌 1의 세 가지 이야기 중에선, 3편 '잔혹한 게임'이 가장 맘에 든다. 원작에 있기에 답도 알려져 있는 '브루스 파팅턴 설계도' 사건을 가져왔지만 그에 더해 네 가지 신작(? -_-) 게임을 알맞게 꼬아서 스토리를 만들었다. 아주 맘에 들었다. 1편 '분홍색 연구'는 '시작'이기에 당연히 품게 되는 기대를 즐겁게 충족시켜 준 편이고, 2편 '눈 먼 은행가'도 좋았지만 클라이막스의 격투 분위기가 쪼매 헐렁해서 맥이 좀 빠졌다.

 

음, 1편 마지막에 '중국 식당' 얘길 하더니 2편 줄거리는 중국에 초점이 맞춰졌고, 2편 마지막엔 '붉은 레이저 포인터'가 OOO을 죽이더니 3편에서는 그 포인터가 사방을 날아댕겼지(마지막에 가서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이거 작가들이 의도한 거 맞아? 그냥 내 생각일 뿐인가?? 어쨌든, 그러면 3편에 나온 어떤 힌트가 시즌 2의 1편으로 연결될 수도 있으려나?

 

 

 

이성에 대해 조잘거리고 상상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의 이상형이었던 남자, 셜록 홈즈. 뭣 때문에 그랬는지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지. 30년 전 얘긴걸. 그냥 그래 왔고, 공기처럼 내 주위를 감싸며 돌아댕기는 이미지였어. 홈즈를 모티브로 소설도 두 개나 썼잖아. 하나는 지금도 진행형.

 

"내 이상형 홈즈" - 이 말이 나오면 늘 따라나오는 말이 있는데, 여기도 덧붙여야지. 홈즈가 실제 인물이고 내가 그를 만날 수 있다면, 그는 날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신사인 19세기 홈즈도 그럴진대 이 21세기 셜록은 대놓고 무시할 듯. 젠장, 몰리 후퍼 취급이나 받겠지.

 

내 스맛폰 배경화면은 이놈들이 점령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