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만화

빠졌다.... 데스노트.

KayAKAJemima 2008. 8. 10. 02:06

참.... 내 종교적 금욕주의가 해체에 해체를 거듭하고 있는 요즘.... 드디어 이런 만화에까지 손을 대게 되다니.

 

그놈의 '종교적 금욕주의'가 뭘 뜻하는 건지 정의조차 제대로 내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래, '신실한' 박가영은 아주 보기가 껄끄러웠을 만화다 이거라....

 

사신이 살인노트를 지상에 떨어뜨리고, 인간이 그 전능한 물건을 갖고 스스로 위대하다는 착각 아래 무너져가는 모습을 킬킬대며 지켜본다. 그래, 주인공 녀석은 '내가 정의다. 난 신이 된다.'라고 지껄인다. 이게 뭔 내용인지 모를 적 만화 표지를 봤을 땐 그 킬킬대는 사신, '류크'가 끔찍하게 무서웠다. 이건 대체 뭐야.... 사악이 요동을 치는 요즘 세대에 딱 맞는 만화야.

 

어느 날. 우연히. 오후에.

 

전화를 기다리다 오빠가 옆에 놔둔 이 만화책 1권을 펼쳐들고 읽었다.

 

1권 중간쯤까지 읽다가, 목적한 전화를 받고, 그대로 그날 밤까지 5권을 내리 읽었다. 범상한 만화책이었음 12권 전권을 독파했으리라. 대사 분량으로 치면 소설책에 버금가서 그 이상은 무리였어.

 

어쨌든, 기본설정과 캐릭터 학습은 마친 거지.

 

아항.... 세간을 들끓게 한 데스노트란 만화가 이거였구나. 나도 이제 왕따는 면하겠네.

 

돌아보면.... 어쩌다 대한민국 권력을 잡아버린 츠기야마 아키히로의 허니문 기간.... 나라걱정하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게시판들을 심심찮게 채웠던, '지금이야말로 데스노트가 필요합니다....'라며 절규하던 열사들의 글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 거야.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夜神 月). 소위 엄친아의 화신같은 청년.... 자신을 200% 믿고, 신이 되어 세상을 바꿀 결심을 하는 무서운 인간.

 

신이 되고자 하는 야가미에 맞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잡고자 뛰어든 탐정, L.

 

 

흐흣, 그렇지. 내가 어느 작품에 빠졌다 함은, 극중 어느 캐릭터에 시선을 두기 시작했다는 의미.

 

L.

 

어떻게 보면, 위에 적은 사신 '류크'만큼이나 괴상한 이미지의 캐릭터였다. 무서워 보였다. 머리카락에 가린 건진 모르지만 아무튼 눈썹도 없고, 생기없이 그려지는 검은 동공뿐인 눈에, 그 밑에 다크서클.

(아아, 그놈의 다크서클! 눈 밑이 시꺼먼 폐인 지존같은 녀석을 영웅으로 만드는 저들의 능력은 도대체 뭐지!!)  

 

 30cm 정교하게 제작된 L 피규어. 인형이지만 작중 이미지 그대로다.

 

그래. 이놈, 매력있었다. 탐정에 사족 못쓰는 나야 이미 넘어갈 운명이었지만, 셜록 홈즈에서 따왔는지는 몰라도 그 나름의 이유있는 착석 자세나 극악의 식성(케잌 등 스위티 킬러...)과 상관없어 보이는 잘 빠진 몸매(-_-), 범인 검거를 위해서라면 범죄자 못지 않은 냉혹한 방법을 쓰기도 하는 냉정함과 무서운 판단력, 거짓말로 상대방 마음 떠보기가 장기 중의 하나, 지고는 못 사는 (발차기로 대표되는) 근성, 그런데 순식간에 앞에 쓴 것들을 다 덮어버리고도 남을 듯한 갑자기 귀엽게 변신하는 모습.

 

그래서, 엄친아의 현신(-_-) 야가미 라이토가 있는데도 난 이놈한테 붙었다.

 

그렇게, 만화책에서 그림과 글로만 만났는데도 날 홀딱 사로잡은 이놈이, 글쎄, TV 애니로 숨쉬고 말하게 된 이놈이 글쎄 성우 야마구치 캇페이(山口 勝平)의 목소리를 빌렸댄다. 내 첫사랑 일본 성우인 야마구치씨!!

 

들어봤다. 음.... 인기 시리즈들에 주조연으로 너무 남발된 목소리라 솔직히 별 기대 안했는데, 그렇게 어둡고 습한 목소리라니.... 생기주접발랄 소년들 목소리와는 전혀 딴판! 멋졌다!! 쿠도 신이치에 이어 2등 자리 기꺼이 줍니다!!!

 

성우 개인으로서도 이렇게 낮은 목소리 연기는 처음이라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한다. 죽여줬다...

 

야마구치씨는 이로서,

 

탐정만화의 양대 산맥 -

 

'명탐정 코난'의 쿠도 신이치 - 아, 덤으로 카이토 키드도.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의 긴다이치 하지메

(TV판으로 굳어진 성우 마츠노 타이키 이전에, 극장판의 초대 긴다이치를 맡았음)

 

에 이어,

 

'데스노트'의 세상 안에서 세계 제 1의 탐정이라는 L의 목소리까지.

 

탐정 목소리 3연패 하셨습니다.

 

축하해유.

 

 

 

 

 

 

사족, 작품 특성상 이름 - 특히 본명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L의 본명은 L Lawliet이다. 아마 만화 본편엔 등장하지 않을 거다. 통칭이자 가명으로 사용하던 L이 본명이었다니, 그의 이름을 상상하던 이들을 멋지게 배반한 설정이다. 왠지, 본명은 (L로 시작하는) 로렌스였다... 로이드였다... 하기엔... 뭔가 신비감이 깨지잖아.... ㅡ.ㅜ

 

Lawliet은 '법과 빛'이란 뜻이며 '로우라이트'로 표기하던데... 법과 빛이면 Lawlite 아닙니까? 아닌가?

 

L의 이야기가 끝난 7권 이후는, 확실히 재미가 덜하다. 그를 대신하기 위해 투입한 등장인물들은, L의 캐릭터가 그랬던 것처럼 살아 뛰어다니지 못하는 느낌. 결말을 알고 있으나 12권 모두 읽어보긴 해야겠지.

 

L이 그립다고~~~

 

하나, 오바 츠구미 - 이렇게 개성 폭발하는 캐릭터를 모처럼 만들어놓곤, 지가 스토리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다 어쩔 수 없이 이넘을 죽이냐...? 바보아냐!!!

 

TV판 동영상 찾기 돌입!